완도

부소산 남쪽의 넓고 평탄한 대지에 위치한 관북리 유적은 지난 1982년부터 발굴조사가 이어져 온 곳으로, 대형 전각 건물지와 수로·도로 시설, 대규모 대지 등이 확인되며 백제 사비기 왕궁지로 인식돼 왔다.이번 16차 발굴조사에서는 삭설을 포함해 총 329점의 목간과 함께 가로로 불어 연주하는 관악기인 횡적(橫笛) 1점이 출토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횡적은 삼국시대를 통틀어 실물이 확인된 유일한 관악기로, 백제 횡적의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된 사례다.
출토된 횡적은 7세기 백제 조당(朝堂) 건물로 파악되는 건물지 인근의 직사각형 구덩이에서 발견됐다. 해당 구덩이는 가로 2m, 세로 1m, 깊이 2m 규모로, 내부 유기물 분석 결과 인체 기생충란이 검출돼 조당에 부속된 화장실 시설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대나무로 제작된 횡적은 네 개의 구멍이 일렬로 뚫려 있으며, 일부가 결실된 채 납작하게 눌린 상태로 출토됐다. 잔존 길이는 224㎜다. 엑스레이 분석 결과, 입김을 불어넣는 한쪽 끝이 막힌 구조임이 확인되면서 세로 관악기가 아닌 가로 피리임이 판명됐다. 이는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백제 금동대향로에 표현된 세로 관악기와도 명확히 구분된다.
연구소는 중국과 일본의 사례를 비교 분석한 결과, 이번에 발견된 횡적이 오늘날의 소금(小笒)과 유사한 악기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사비 백제 왕궁의 핵심 공간에서 실제 악기가 발견된 것은 백제 궁중음악 연구는 물론, 당시 음악과 소리를 실증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함께 출토된 목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번에 확인된 목간은 국내 단일 유적에서 출토된 최대 수량으로, 백제 사비기 가운데서도 가장 이른 시기의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사비 천도 초기 단계의 수로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됐으며, 간지년이 기록된 목간을 통해 제작 시기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경신년(庚申年)’은 540년, ‘계해년(癸亥年)’은 543년에 해당하는데, 이는 백제가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한 538년 직후의 시기다. 이를 통해 사비 도성 조성과 중앙 행정 체계가 빠르게 정비됐음을 보여준다.
목간에는 인사 기록, 국가 재정 운영과 관련된 장부, 관등·관직명이 적힌 문서가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국내 최초로 확인된 편철(編綴) 목간 가운데 ‘功四爲小將軍刀足二(공사위소장군도족이)’라고 적힌 목간은 ‘공적이 4개인 도족이를 소장군으로 삼다’는 뜻의 인사 문서로 해석된다.
이 밖에도 월 단위 식량 지급 내역을 기록한 장부 목간과 함께, 사비 도성의 중앙 행정 구역인 5부(上·前·中·下·後部)와 방(方)-군(郡)-성(城)으로 이어지는 지방 행정 체계 개편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들도 다수 확인됐다. ‘웅진·하서군’, ‘나라·요비성’ 등 새로운 지명은 백제의 행정 조직 변화와 국가 운영 실상을 생생하게 전한다.또한 ‘입동(立冬)’, ‘인심초(人心草)’, ‘현곡개(玄曲愷)’와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로 여겨졌던 ‘전(畑)’자가 적힌 목간은 백제의 선진적인 문화 수준과 동아시아와의 활발한 교류를 보여주는 증거로 평가된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발굴 성과는 약 1,500년 전 백제의 문서 행정 실태와 음악 문화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며 "앞으로도 사비기 백제 역사를 명확히 규명하기 위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를 이어가고, 그 성과를 국민과 학계에 지속적으로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사진1 - 부여 관북리 유적 발굴지 전경
사진2 - 횡적이 출토된 구덩이
김라희 기자 rla2422c@naver.com






편집 : 2026.07.26 (일) 11: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