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1년 ‘나르발호 사건’ 교과서에… 나주, 한불 외교사의 출발점으로 재조명
검색 입력폼
호남

1851년 ‘나르발호 사건’ 교과서에… 나주, 한불 외교사의 출발점으로 재조명

- 조불수호통상조약보다 35년 앞선 첫 공식 접촉 확인
- 비금도 좌초에서 우호 만찬까지… 인도주의 구조가 외교사로
- 나주시, 학술·전시·국제교류로 역사적 가치 확산

+
[나주=김도영 기자] 1851년 전라도 나주목 관할 해역에서 발생한 ‘나르발호 사건’이 고등학교 심화 프랑스어 교과서에 수록되며 나주가 한불 외교사의 출발점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나주시는 지난 19일 교과서 집필에 기여한 최내경 집필총괄자(서경대학교 교수), 김미연 검토위원(서울사대부고 프랑스어 교사), 양수경 나주시 시정자문위원(한국불어교사협회 대외협력이사, 전 광주불어교사협회장)을 초청해 감사장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과 프랑스의 공식 외교관계는 1886년 체결된 조불수호통상조약을 기점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피에르 엠마누엘 후(Pierre-Emmanuel Roux) 파리시테대학교 교수의 연구에 따라, 이보다 35년 앞선 1851년 ‘나르발호 사건’이 양국 간 첫 공식 외교적 접촉이었다는 사실이 학계에서 확인됐다.‘나르발호(Narval) 사건’은 1851년 4월 2일 프랑스 포경선 나르발호가 당시 전라도 나주목 관할이던 비금도 인근 해역에서 좌초하면서 시작됐다. 선원 29명이 상륙했고, 이 소식은 중국 상하이에 주재하던 프랑스 영사 샤를 드 몽티니(Charles de Montigny)에게 전달됐다.

몽티니는 같은 해 5월 2일 직접 비금도를 방문해 자국민 구조에 나섰다. 당시 나주 목사직을 겸임하던 남평현감 이정현은 프랑스 외교 사절단을 정중히 맞이했다. 양측은 긴장 대신 예를 갖춘 접견을 택했고, 조선의 전통주와 프랑스의 샴페인을 함께 나누는 만찬이 마련됐다.이 만남은 단순한 구조 활동을 넘어선 문화교류의 장으로 기록된다. 몽티니가 기념으로 받은 조선 옹기 술병은 현재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에 소장돼 있어 당시의 우호적 교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무력 충돌이나 통상 교섭이 아닌 ‘인도주의적 구조’와 ‘문화적 교류’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나주목 지방관이 외국 외교 사절단을 공식적으로 접견하고 예우한 기록은 조선 후기 대외관계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나주시는 2023년 ‘한국과 프랑스 외교사 재조명을 위한 나주와 프랑스의 첫 만남 학술포럼’을 시작으로 나르발호 사건을 체계적으로 재조명해왔다. 전시체험관 조성 추진, 역사만화 제작 등 대중적 콘텐츠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6월에는 프랑스 중부의 클레르몽페랑시를 방문해 우호교류 협약을 체결하며 문화·교육·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19세기 우호적 만남의 기록을 21세기 국제교류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나주시 관계자는 "조불수호통상조약보다 35년 앞선 한불 첫 외교사의 중심에 나주가 있었다는 사실이 국가 교육과정에 반영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인도주의적 구조와 음식·문화 교류가 함께한 우호의 기록이 미래 한불 교류의 기반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이번 교과서 수록을 계기로 ‘나르발호 사건’은 지역사를 넘어 국가 외교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170여 년 전 비금도 해역에서 시작된 작은 만남이, 오늘날 한불 관계를 잇는 역사적 다리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사진1 - 윤병태 시장이 지난 6월 프랑스 국제교류 방문
사진2 - 시정 자문위원 감사장 수여
김도영 기자 jinee7198@naver.com
🎁

구독 및 후원 안내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구독과 후원은 뉴스 투모로우가 진실을 보도하는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정기구독 / 일시 후원 금액 : 자유 결제

이시각 주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