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정병욱은 연희전문학교 시절 윤동주가 각별히 아꼈던 후배였다. 우리말 사용이 금지되던 시절, 윤동주는 직접 육필로 시를 써 묶은 원고를 정병욱에게 건넸다.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별과 같은 19편의 시가 또박또박 담긴 원고였다. 정병욱은 이 원고를 명주 보자기에 싸 항아리에 담아 마룻바닥 아래 숨기며, 목숨을 걸고 지켜냈다.정병욱은 훗날 회고록 『잊지 못할 윤동주 형』에서 "내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일은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린 일”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윤동주를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시 「흰 그림자」에서 따온 ‘백영(白影)’을 자신의 호로 삼으며, 평생을 그 약속에 바쳤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명동학교와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직후, 그는 졸업을 앞두고 시 18편을 골라 ‘서시’를 붙인 시집 원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3부 엮었다. 한 부는 자신이, 한 부는 지도교수 이양하에게, 그리고 마지막 한 부는 정병욱에게 맡겼다.윤동주는 생전에 77부를 인쇄해 지인들과 나누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지만, 시대는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돼 투옥된 그는 끝내 차디찬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시인으로 등단조차 하지 못한 채였다.
그러나 윤동주는 사라지지 않았다. 정병욱이 지켜낸 친필 유고를 바탕으로 1948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간행되며, 윤동주는 비로소 ‘시인’으로 부활했다. 오늘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의 자리에 윤동주가 서게 된 결정적 순간이었다.광양 망덕포구에 위치한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재 제341호)은 그 역사의 현장이다. 당시 유고를 숨겼던 상황이 그대로 재현돼 있으며, 집 안에 들어서면 한 권의 시집이 지켜낸 민족의 언어와 양심이 고스란히 전해진다.가옥에서 포구를 따라 약 500미터를 걸으면 ‘윤동주 시 정원’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31편 전편이 시비로 조성돼 있다.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은 물론, 최근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국빈 만찬에서 영어로 낭송해 다시 주목받은 「바람이 불어」도 만날 수 있다.
광양시는 망덕포구와 배알도 섬 정원을 잇는 해상보도교의 이름을 ‘별헤는다리’로 명명하며, 도시 전반에 윤동주 서사를 입히고 있다. 윤동주 테마 관광상품 운영, 여행사 인센티브 지원 등도 병행하며 ‘윤동주의 문학적 고향, 광양’이라는 도시 브랜드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이현주 광양시 관광과장은 "윤동주의 생물학적 고향은 북간도이지만, 시인 윤동주의 문학적 고향은 그의 육필 시고를 지켜낸 대한민국 광양”이라며 "탄생 108주년을 맞아,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추구했던 윤동주의 시 정신을 직접 걷고 느끼는 역사·문학기행을 적극 추천한다”고 말했다.별을 헤며 시대를 견뎠던 한 시인, 그리고 그 시인을 끝까지 지켜낸 한 사람. 광양 망덕포구는 오늘도 그 조용한 기적을 품고 있다.
사진1.2 - 광양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
장형덕 기자 gas4036@naver.com






편집 : 2026.07.27 (월) 07: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