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특히, 조사지점이 고도도 봉수로 이어지는 봉수로의 시작점에 위치하고 있고,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이 일대가 ‘봉수동(烽燧洞)’이라 불렸다는 점에서 봉수를 관리하던 봉수군의 거주지(봉수군마을)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조사단의 판단이다.영광 고도도 봉수는 조선시대 제5로 직봉노선 중 여수 돌산도 봉수에서 시작해 양천 개화산(현 서울 남산) 봉수에 이르는 23번째 연변봉수로 서남해안 방어망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통신·국방유적이며, 봉수군은 봉수대에서 횃불(炬火)을 들고 신호를 전달하거나 후망(候望)을 맡은 군사로, 한 봉수마다 약 100명 규모로 구성되어 5명이 5일씩 윤번으로 수직(守職)하는 체계로 운영되었다.
이번에 확인된 봉수군마을 유적은 조선시대 봉수군의 실질적인 생활공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국내 최초 사례로 봉수 운영체계와 봉수군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자료로 평가된다.영광군 관계자는 "향후 봉수군 마을과 봉수로에 대해 연차적인 학술조사를 실시하고, 사적(제5로 직봉-영광 고도도 봉수 유적) 지정구역에 포함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사진 - 고도도봉수 봉수군 마을 내 우물 터
성종화 기자 jinee7198@naver.com






편집 : 2026.07.28 (화) 01:19


